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K-컬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1990년대 젊은 영화학도들의 도전과 실험 정신이 있었다. 당시 독립영화인들은 제도권의 한계를 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했고, 다양한 지원과 연대 활동이 그 토대를 마련했다.
연세대학교 영화 동아리 출신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작은 모임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살인의 추억>을 거쳐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며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류승완 감독은 독립영화 워크숍과 단편 제작을 거쳐 저예산 영화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한국 액션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작은 시작이 제도적 기반과 만나면서, 이들의 도전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 한국 영상 산업의 뿌리로 이어졌다.
이제 웹드라마 산업 역시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웹드라마는 영화도 아니고, 방송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머물며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나 방송 관련 기관의 지원에서 배제되고, 유통 역시 대형 제작사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소규모 제작사와 독립 창작자들은 완성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특히 OTT 플랫폼의 외면으로 인해 다수의 웹드라마가 유튜브와 같은 무료 플랫폼에만 공개되는 현실은, 창작자들의 수익 구조를 빈약하게 만들고 지속 가능한 제작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통해 영화산업을 육성해 왔으며, 현재는 국내 OTT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형 OTT’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웹드라마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소규모 제작사의 웹드라마도 이와 같은 제도적 지원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창작자 보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에서 넷플릭스에 밀려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국내 OTT에게도, 웹드라마는 차별화된 콘텐츠 전략이 될 수 있다. 빠른 제작 주기와 참신한 소재, 다양한 장르 실험이 가능한 웹드라마는 대형 플랫폼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형 OTT와 국내 주요 플랫폼이 웹드라마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개 기회를 열어줄 때, 이는 곧 국내 OTT 산업 전체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최근 생성형 AI의 확산은 웹드라마 산업에 양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분별한 활용은 작품의 품질 저하와 창작자 일자리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소규모 제작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큰 제작비가 필요했던 영상 효과, 세트 구현, 심지어 기초적 스토리 작업까지도 AI를 활용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규모 제작사에는 AI를 활용할 자본도 기술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대형사만이 AI의 이익을 선점하고,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가 과거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를 위해 제작 스튜디오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것처럼, 이제는 생성형 AI 기반의 제작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AI 전문 스튜디오 구축, 교육 과정 개설, 창작자 지원 사업은 웹드라마 산업의 미래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제를 현실화할 수 있는 주체가 K-웹드라마협회다. 협회는 제작사와 창작자의 요구를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고, 지원 제도의 운영 파트너가 되어, 소규모 제작사도 AI 시대의 기회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웹드라마 제작사와 종사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산업 대표 기구, 즉 K-웹드라마협회가 필요하다. 협회는 제작사 간 연대와 공동 기금을 통해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마련하고, 플랫폼과의 협상에서 제작사의 권익을 지켜낼 수 있다. 또한 해외 진출과 공동 배급을 지원하며, 나아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웹드라마 산업의 제도적 위상을 확보하는 구심점이 될 것이다.
웹드라마는 단순히 ‘짧은 드라마’가 아니다. 이는 미래 세대의 시청 문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형식이며, 한국의 창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지금 우리가 협회를 세워 제도적 울타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창작자들의 도전은 쉽게 소모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K-웹드라마협회가 출범해야 할 때다. 협회는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고, 산업의 공정성을 확립하며, 한국 웹드라마를 글로벌 K-콘텐츠의 새로운 주역으로 성장시킬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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