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분야에서 자주 회자되는 상식이 있다. 특정 제품을 자주 소비하는 헤비유저는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한 브랜드만 고집한다는 것이고, 반대로 소비량이 적은 라이트유저는 충성도가 낮아 여러 브랜드를 두루 시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시장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커피 애호가는 A브랜드 원두, B브랜드 머신, C브랜드 텀블러를 섭렵하며 다양한 브랜드의 세계를 누비는 반면, 커피에 무심한 사람은 습관적으로 늘 같은 D브랜드 인스턴트 커피만 집어 들곤 한다.
이런 역설은 단순히 생활용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웹드라마라는 콘텐츠 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웹드라마의 헤비유저는 단순히 시청 시간이 긴 이용자가 아니다. 이들은 웹드라마라는 장르에 깊은 애정을 가진 팬이자, 장르 자체에 충성하는 집단이다. 플레이리스트, 와이낫미디어 같은 대형 채널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생소한 신생 제작사의 콘텐츠까지 찾아 나선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화제가 된 웹드라마 ‘엑스엑스(XX)’다.
초기에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헤비유저들이 새로운 작품을 탐험하고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면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헤비유저는 특정 채널에 묶이지 않고 장르 자체에 충성하며, 그 충성심은 곧 탐험과 방랑의 행동 양식으로 나타난다.
알고리즘은 이런 방랑을 촉진하는 핵심 기제다.
유튜브는 “이 작품을 본 시청자가 좋아한 다른 작품”을 끊임없이 추천한다. 결과적으로 헤비유저는 알고리즘의 안내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고, 다양한 채널을 넘나들며 시청 경험을 확장한다.
헤비유저가 ‘콘텐츠 방랑자’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라이트유저의 패턴은 정반대다.
이들은 웹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우연히 노출된 인기작을 통해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에이틴’ 시리즈는 수많은 라이트유저에게 첫 웹드라마 경험을 제공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가 그 이후 다른 작품으로 이동하기보다는 같은 채널의 비슷한 콘텐츠만 소비하며 머무르는 모습을 보였다.
알고리즘도 이 성향을 빠르게 파악한다.
라이트유저가 특정 시리즈를 연달아 시청하면, 해당 채널 콘텐츠 위주로 추천을 강화한다. 반대로 웹드라마 외의 다른 장르로 관심이 옮겨가면, 알고리즘은 웹드라마 추천을 과감히 중단한다.
라이트유저에게 알고리즘은 새로운 모험을 열어주는 탐험가가 아니라, 익숙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안내하는 안내자에 가깝다.
결국 라이트유저는 ‘방랑자’가 아니라 ‘정착자’다. 다양한 작품을 떠도는 대신, 익숙한 시리즈와 채널에 머물며 제한된 충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신생 제작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라이트유저의 ‘우연한 만남’을 필연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튜브에서의 첫 클릭은 썸네일과 제목, 그리고 영상 초반 30초의 힘에 달려 있다. 한 번의 클릭이 정주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입부의 흡입력이 필수적이다.
둘째, 헤비유저에게 돌아올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정기적인 업로드, 댓글을 통한 소통, 다른 채널과의 협업은 헤비유저가 꾸준히 채널을 탐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들이야말로 신생 제작자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 장르 팬덤을 확대하는 핵심 집단이기 때문이다.
셋째, 알고리즘을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시청 패턴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초반 이탈률을 낮추고, 연속 시청률을 높이는 전략은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더 널리 추천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촉매제가 된다.
웹드라마의 성공은 단순히 조회 수의 문제가 아니다. 라이트유저의 습관적 충성과 헤비유저의 방랑하는 탐험심을 동시에 끌어안을 때 비로소 성장의 토대가 마련된다.
작은 채널도 한 번의 우연한 클릭을 정주행으로 만들 수 있고, 신생 제작사도 헤비유저에게 “탐험할 만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이 오늘의 작은 시도가 내일의 성과로 이어지는 길이다.
웹드라마 산업은 지금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신생 제작자들이 이 패턴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한다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넘어 성장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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