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방은 소멸합니다. 그렇다면 지역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해답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에 있습니다."
— 청운대학교 방송영상학과 이호은 교수 기조강연 中

최근 충남 당진에서 개최된 AI 영상산업 정책 콘퍼런스에서 청운대학교 방송영상학과 이호은 교수님의 기조강연을 접했습니다.
단순한 '생성형 AI 툴 활용법'을 넘어, 인류의 스토리텔링 본능(호모 나랜스)부터 미디어 철학, 그리고 AI가 지역(로컬)과 만났을 때 열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심도 있게 풀어낸 인상적인 강연이었습니다. 핵심 인사이트를 정리해 공유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존재입니다. 존 닐(John D. Niles) 교수가 정의했듯,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창작하고 이를 통해 사회와 관계를 맺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입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역시 인간이 유한한 수명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간접 경험(이야기)을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의 교훈: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42.195km를 전력 질주한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남긴 메시지는 "기뻐하라, 우리가 승리했다!"라는 단 두 마디였습니다. 전령이라는 미디어의 소멸(사망)과 함께 메시지만이 도시에 닿았던 이 사건은, 인간이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메시지를 전하고자 끊임없이 매개체를 혁신해 온 역사의 상징입니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통찰처럼 "미디어는 메시지이자 인간 감각의 확장"입니다. 오늘날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그리고 AI는 인간의 뇌와 신경망을 전 지구적 차원의 부족사회(지구촌, Global Village)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과 교통의 비약적인 발전이 지역에 늘 기회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현대 문명의 위험성을 '속도에 의한 공간의 소멸'로 통찰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KTX 고속철도망입니다. 서울과 지방을 잇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고속열차가 정차하는 몇몇 거점 대도시만 인지할 뿐 그 사이에 위치한 수많은 중간 지역은 풍경 속에서 지워지고 스쳐 지나갑니다.
질주(疾走)의 역설: 고속화된 속도는 수도권 집중과 빨대 효과를 가속하여, 결국 '공간의 소멸 = 지역의 소멸'을 촉진합니다. 따라서 지방이 물리적 공간 인프라나 규모로 수도권과 정면 승부하려는 전략은 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역은 어떤 무기를 쥐어야 할까요? 이호은 교수는 미국 할리우드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서사 구조 차이에서 해답을 제시합니다.
| 구분 | 할리우드 (공간의 축) | K-콘텐츠 (시간의 축) |
|---|---|---|
| 서사적 배경 | 역사가 짧아 공간을 무한히 확장 | 반만년 역사 기반 시간의 축을 확장 |
| 대표 사례 | <아바타> (외계 행성), <미션 임파서블>, <007> 등 글로벌 로케이션 |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철인왕후>, <폭군의 셰프> 등 타임슬립·시대극 |
| 지역 적용점 | 대규모 세트장·자본 집약적 인프라 필요 | 지역 고유의 역사·설화·인물 서사 발굴 |
"물리적 공간을 넓힐 수 없다면, 지역이 가진 '시간의 축'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 괴츠 그로스클라우스(Götz Grossklaus)는 현대 영상 미디어가 과거-현재-미래의 분절된 간극(Intervall)을 허물고, 이들이 공존하는 '두터워진 현재(Thickened Present)'를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혜자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아픔을 중첩하며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라고 독백하듯, 미디어는 시간을 재구성하여 깊은 울림을 자아냅니다.
과거 대규모 예산과 수도권 중심의 특수효과·제작 인프라가 필요했던 고품질 영상 제작의 장벽이 생성형 AI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아이디어와 기획력만 있다면, 충남 당진에서도 1인 창작자가 글로벌 수준의 시각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대학과 청년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라:
청운대학교를 비롯한 지역 대학과 당진시가 협력하여, 청년들이 로컬 스토리에 AI를 접목할 수 있도록 교육·장비·어워드(K-웹드라마어워드 등) 생태계를 적극 뒷받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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