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논쟁을 넘어선 시장 수용성, 그리고 '제작의 민주화'가 열어줄 새로운 생태계
"AI의 눈물은 디지털로 렌더링되지만, 배우의 눈물은 몸속에서 흘러나오는 겁니다. 거기엔 온기와 향기가 있죠."
중국의 원로 배우 펑위안정이 남긴 이 말은 AI 영상 제작의 한계를 지적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다. 하지만 지난달 말, 이 낭만적인 선언의 발밑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졌다.
실제 사람 배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30부작 판타지 드라마 〈후서유기〉가 중국 후난위성TV의 오후 8시 황금시간대에 정규 편성되어, 첫 방송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중국에서 신기한 AI 드라마가 하나 나왔다"는 가벼운 해외 토픽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진입장벽이 높은 방송 플랫폼인 '지상파 황금시간대'의 문턱을 AI 영상이 단숨에 넘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번 사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후서유기〉는 결코 완벽한 작품이 아니었다. 인물이 계단을 오를 때 빈손이었다가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지팡이를 쥐고 있거나, 씬마다 얼굴 표정과 소품이 미묘하게 바뀌는 등 실사 드라마였다면 명백한 '방송사고(NG)'급 결함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기존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늘 이렇게 안도해 왔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어색한 손가락이나 튀는 소품을 보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동시간대 1위라는 시청률은 대중의 콘텐츠 소비 기준이 '완벽한 실사적 무결점'에서 '조금 부족해도 볼 만큼 재미있는가'로 이미 이동했음을 증명한다.
품질 논쟁보다 더 냉혹한 현실은 압도적인 제작 단가와 속도다.
이 수치가 방송 산업에 던지는 질문은 잔인할 정도로 단순하다.
"도대체 왜 굳이 비싸고, 오래 걸리고, 위험부담이 큰 기존 방식으로만 만들어야 하는가?"
이 충격파는 회당 제작비 15억~20억 원에 짓눌려 드라마 편성을 줄이고 있는 한국 방송계와 OTT 시장으로 직결된다.
정규 미니시리즈 전체를 한 번에 바꾸진 못하더라도, 판타지, 사극, SF, 웹드라마, 어린이물, 명절 특집극처럼 '인간의 일상 연기'보다 비주얼과 세계관이 중요한 장르부터 AI 도입이 급물살을 탈 것이다.
방송사가 파트너를 고르는 기준이 바뀐다. 과거에는 'A급 배우를 누구 섭외했는가'가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원천 IP ➔ 프롬프트 기획 ➔ AI 캐릭터 통제 ➔ 초고속 렌더링 ➔ 후반 보정]으로 이어지는 자체 AI 파이프라인을 쥐고 있는 스튜디오가 방송사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OTT는 편성표의 제약이 없다. 지금까지 10억 원짜리 콘텐츠 10편을 제작해 대박을 노렸다면, 앞으로는 2억 원짜리 AI 콘텐츠 50편을 시장에 먼저 던져보는 전략이 가능해진다. 데이터를 통해 시청 반응이 터진 검증된 IP에만 후속 자본을 집중 투입하는 '애자일(Agile) 미디어 모델'이 표준이 된다.

AI가 모든 배우를 없애지는 않는다. 다만 배우와 현장 스태프의 가치는 철저하게 양극화된다.
동시에 새로운 직업이 현장을 채운다. 중국 남부에는 수백 명이 모여 AI에 프롬프트를 넣고 수만 장의 장면 중 쓸 만한 컷을 골라내는 '처우카스(抽卡师·카드 뽑는 사람)'들이 일하는 대형 AI 제작 공장이 생겨났다. 감독의 역할 역시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고 카메라 각도를 지시하는 사람에서, AI에게 장면과 캐릭터를 설계하고 무수히 쏟아지는 결과물 중 최선의 컷을 큐레이션해 서사로 꿰어내는 'AI 디렉터'로 재정의되고 있다.
한국 영상 산업의 가장 큰 위기는 미국의 모델이나 중국의 툴보다 기술력이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방송사와 정책 당국의 '인식 격차'다.
국내 기득권 방송가와 영화계가 "AI 영상은 여전히 손가락이 이상하고 감정이 없어 상업성이 없다"고 폄하하며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 경쟁국들은 "손가락이 조금 이상해도 시청자가 재밌게 보면 그만이다"라며 시장 수용성을 확인하고 거대한 산업 궤도에 올라탔다.
품질의 결함은 기술 고도화로 몇 달 만에 해결되지만, 시장을 선점당한 뒤 벌어지는 생태계의 격차는 영원히 좁힐 수 없다.
한국의 방송·미디어 환경은 향후 4년간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갈 것이다.
| 단계 / 구분 | 핵심 양상 및 제작 방식 |
|---|---|
| 1단계 (지금~2027년) AI 탐색 및 장르 실험기 |
방송사와 OTT가 AI 숏폼, 웹툰 원작 단편, 애니메이션, 파일럿 예능을 통해 기술적 한계와 시청률 반응을 타진하는 시기. |
| 2단계 (2027~2028년) 하이브리드 제작 표준화 |
CJ ENM의 〈아파트〉나 국산 SF 블록버스터 〈스틸레이〉처럼, '인간 배우의 실제 연기 + AI 가상 배경/VFX'의 결합이 중소 제작사의 지배적인 표준 파이프라인으로 안착하는 시기. 4~5일 만에 고품질 드라마를 완성해 제작비를 극적으로 낮추는 모델이 정착된다. |
| 3단계 (2028~2030년) AI 오리지널 IP 경쟁 |
특정 장르에서 배우와 물리적 촬영을 아예 배제한 순수 AI 오리지널 대작이 정규 편성되며, "AI로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압도적인 세계관과 이야기를 기획했는가"로 승부하는 시기. |
이 거대한 변화의 끝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수 있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지방(로컬)의 독립 창작자들이다.
중국 숏폼 시장의 95%(1분기 기준 12만 2천 편)가 이미 AI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영상의 생산수단이 충무로나 상암동의 거대 스튜디오에서 '개인의 PC와 AI 워크스테이션'으로 완전히 탈중앙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영화 한 편을 만들려면 수십억 원의 자본, 고가의 카메라 렌탈, 수십 명의 스태프, 대형 세트장이 강제되었다. 자본이 없으면 시나리오는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I 파이프라인이 정착되면 "돈이 없어서 못 만드는 시대"는 끝나고 "돈이 없어도 뛰어난 아이디어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수도권의 대형 기획사와 100억 원짜리 텐트폴 드라마로 맞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로컬에서 1억 원짜리 고품질 AI 드라마 10편을 연속으로 쏘아 올리는 '린(Lean) 미디어 스타트업 생태계'라면 승산은 충분하다.
천안 AI 대학영상제나 당진 K-웹드라마어워즈 같은 지역 기반 영상 프로젝트들이 단순한 축제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독립 창작자들을 발굴해 초기 시장으로 진입시키는 핵심 인큐베이팅 거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자체와 정부의 정책은 몇천만 원짜리 단발성 제작비 쪼개주기나 촬영 로케이션 유치라는 낡은 관성에서 즉각 벗어나야 한다.
대형 세트장이 없어도 청년들이 마음껏 가상 공간을 구현할 수 있는 중소형 버추얼 스튜디오와 고성능 공용 렌더링 서버 지원
AI 프롬프트 엔지니어, 지역 대학의 청년 배우, 연출가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플랫폼 구축
기술 만능주의에 빠진 무인 AI 영상이 아니라, 청년 배우와 스태프를 고용하고 AI를 날개로 활용해 제작비를 낮추는 프로젝트에 제작지원금과 가점을 집중하는 제도적 설계
중국 후난위성TV의 시청률 1위 사건이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AI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AI 드라마가 방송의 황금시간대에서 기존 인간의 드라마를 꺾었다는 것이 진짜 뉴스다."
단편·장편·숏폼 등 다양한 형태의 웹드라마와 영상 창작물을 만나는 새로운 창작자들의 영상 무대입니다.
📅 행사 일정
2026년 10월 31일(토)
📍 장소
당진시 문화공감터
AI를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대학생·대학원생 창작자들의 영상제입니다.
📅 행사 일정
2026년 10월 17일(토)
📍 장소
천안인생극장
제4회 당진 K-웹드라마어워즈 문의
webdramaawar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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